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
오스트리아는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그래서 문화와 민족 언어 종교 등 하나로 통합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스트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앙 집권화 노력은 귀족들 반대로 부딪히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강력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카를 6세는 수도빈에 상업 학교를 설립해서 상인을 키웠다. 또 빈에서 사방으로 뻗은 산악도로를 정비하고 삽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하는 지역끼리 관세도 철폐했다.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항구 도시인 트리에스테와 피우메를 자유항으로 지정해서 아드리아해 무역을 장악한 베네치아와 정쟁을 치루기도 했다. 하지만 노력했던 계획과 달리 귀족사이 갈등이 심해서 중상주의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동인도 회사도 영국의 압력으로 인해서 망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왕위계승이 남자만 가능했는데 카를 6세는 아들이 없어서 그게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딸밖에 없던 터라 카를 6세는 법을 고쳐서라도 딸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를 잊게 되었다. 하지만 1740년 왕위 계승문제로 전쟁이 벌어졌는데 그 틈을 타 주변 국가들이 이 기회에 오스트리아 땅을 차지하고자 많은 유럽 국가들이 전쟁에 참여했고 그 결과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 슐레지엔 지방을 차지했다.
떠오르는 태양, 프로이센
프로이센은 약한 나라였다. 신성 로마제국 일부였던 프로이센은 신성 로마제국이 붕괴 되고나서 자리를 잡았다. 프로이센은 경제가 빈약하고 인구도 많지 않고 영토 또한 대부분 늪이나 황무지였다. 또한 다른 나라 군대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어서 프로이센은 많은 피해를 받았었다. 한창 종교전쟁 중에 독일의 귀족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이자 프로이센 공작인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프로이센의 지배자가 되었는데 그는 가장 먼저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나라가 빈약하고 경제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군대를 강하게 키워야 나라를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프로이센은 영토를 통합하고 강력한 조세 제도와 국왕의 재산으로 군대를 키우는데 전력을 다했다. 국왕은 검소해서 음식을 간편하게 먹기도 하고 사치스러운 궁중연회나 대관식도 없다고 문화 예술에는 후원조차 하지 않고 오로지 재정확보를 해서 군대 키우기에 연염했다. 그 돈으로 각국의 병사를 모집하기도 했으며 귀족들은 의무로 장교로 복무까지 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군대 정책은 손자까지 이어졌고 이런 활동으로 인해서 군대는 두 배이상 늘어났다. 그 후 그의 아들인 프리드리히 2세가 풍부한 군대와 국고로 인해서 영토 확장을 펼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 슐레지엔 지역을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완전히 장악하게 되어 이전보다 훨씬 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국가가 되어 유럽 강대국 대열에 끼게 되었다.
러시아 절대왕정 확립한 표트르 대제
세상에서 가장 큰 영토를 지닌 나라 러시아는 17세기 이전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문화적이나 경제나 다른나라에 비해서 크게 발전하지도 않았고 동양과 어우러진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화가 있었지만 환경적인 조건으로 발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러시아가 발전하게 된 계기는 표트르 대제가 즉위하고 나서부터였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발전시키려면 서유럽 국가들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네덜란드에 가서 조선소에서도 일하기도 했으며 서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고 기술도 익혔다. 또한 서유럽에서 숙련된 기술자도 러시아로 데려오기도 했다. 당시 남자들은 수염을 길렀는데 모두 자르도록 명령하고 이를 어길 시 세금을 내게 했다. 이는 사실 세금을 걷어 국가 재정을 늘리려 한 데에 있었다. 러시아는 겨울만 되면 바다가 얼어서 교역을 할만한 항구가 없었다. 그래서 얼지 않는 항구인 부동항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발트해가 유럽으로 가기 가장 적합한 위치였다. 하지만 발트해는 스웨덴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러시아는 덴마크, 폴란드와 동맹을 맺고 스웨덴을 공격해서 마침내 전쟁에서 승리하여 발트해와 가까운 네바강 하구에 도시를 세운다. 이 전쟁을 북방전쟁이라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도시 이름을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