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3. 2. 21. 23:29

아편전쟁 원인과 배경, 전쟁으로인한 조약, 제국주의 결과

반응형

아편전쟁 원인과 배경

19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시작으로 산업 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그렇게 됨으로써 자본주의가 점점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성장한 기업은 상품 팔 곳이 필요했다. 상품은 점점 많아지고 돈 많은 은행이나 기업은 투자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 해결책이 바로 식민지였다. 약소국을 식민지로 만들면 원재료들을 아주 싼값에 구입하고, 작은 돈을 주고 일을 시키기도 좋고 식민지에서 싸게 만든 물건을 비싸게 되팔면서 돈을 계속 버는 구조라서, 제국주의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들인 아프리카, 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았다. 그런 와중에 영국은 청나라에 모직과 면화를 수출하고 청나라에서 홍차, 비단, 도자기를 수입했다. 당시 청나라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싫어하기도 했고, 필요한 물품들을 자급자족하는 나라였기도 했다. 그중 홍차를 가장 많이 수입을 했다. 청나라는 은과 홍차를 교환했는데 이런 무역으로 인해서 영국의 은이 청으로 많이 들어감에 따라 큰 무역적자를 맞이한 영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영국은 청나라와 무역에서 물건을 팔 수 있는 지역을 넓혀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청나라는 거절했다. 어떻게 하면 무역으로 손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청나라에 아편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즉 중국 몰래 아편을 수출한 것이다. 아편은 마약의 일종으로 한번 피우기 시작하면 중독돼서 걷잡을 수 없이 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청나라는 이로 인해서 아편 무역을 금지했다. 청나라는 시간이 갈수록 아편에 중독돼서 무역으로 모은 은들이 오히려 아편무역으로 인해서 다시 영국으로 나가는 일까지 생겼다. 청나라는 아편 무역 금지령을 내리고 광주우로 임칙서라는 정치인을 파견하여 아편을 몰수하고 영국상인들의 무역을 금지했다. 영국을 이런 일로 빌미 삼아 1840년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청나라는 산업혁명으로 발전한 영국을 감당할 힘이 없었다. 청나라는 전쟁에서 패배하고 영국과 불평등 조약인 난징조약을 체결한다. 

 

전쟁으로 인한 조약체결, 난징조약, 텐진조약, 베이징조약

난징조약은 1842년에 일어난다. 청나라와 영국의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많은 배상금을 영국에 지불하고 홍콩 또한 영국에 넘겼고, 상하이 포함하여 5개의 청나라 항구를 개방했다. 5개의 항구는 광저우, 샤먼, 푸저우, 닝보, 상하이이다. 또한 홍콩을 영국에 넘겼기 때문에 영국은 홍콩 지배권을 얻었다. 그리고 전쟁 배상금은 물론 중국에 있는 모든 영국인 석방하고 영국을 도운 중국인은 무죄로 해주고 영국의 관리직들도 중국과 똑같이 대우를 해주었다. 이듬해 추가 조약을 맺어서 영국에 영사 재판권과 최혜국 대우도 인정하게 됐다. 이러한 난징조약은  청나라가 다른 나라와 최초로 맺은 근대적 조약이다. 우리나라 강화도조약처럼 영국에게 일방적으로 아주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다. 아편전쟁은 영국과 청나라의 무역불균형으로 인해서 생긴 조약이었고 나중에 청나라가 멸망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불평등 조약으로 인한 무역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교육량은 늘지도 않고 항구 내에서만 제한된 무역활동으로는 좋아지지가 않았다. 1856년 애로호 사건을 구실로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그 사건은 이러하다 광저우 앞바다에 수상한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청나라 관원들은 그 배를 조사했는데 실소유주는 영국인이었고 선원들은 중국인이었다. 청나라 관원은 이를 해적으로 간주했다. 조사 중 영국 국기가 훼손 됐는데 영국은 이때를 기회삼아 영국 국기를 모독했다고 주장하며 제2차 전쟁을 일으켰다. 이때를 기회로 프랑스도 자기 나라 선교사가 청나라에서 피살당한 사건을 구실로 영국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다. 1858년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에 패배한 청나라에게 텐진조약을 맺으려 했다. 그 내용은 즉 더 많은 항구를 추가로 개항하고 크리스트교 선교의 자유를 내용으로 선교사활동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여러 강대국의 간섭을 받게 된다. 청나라는 전쟁 배상금으로 인해서 세금을 더 많이 걷게 되었다. 이런 불만으로 청나라 여러 지역에서 민중들이 운동을 벌였으나 모두 실패했고 청나라에서 조약을 깨자고 요구하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베이징을 점령하여 결국 베이징 조약까지 맺었다. 결국 청나라는 텐진조약을 인정하고 영국에 주룽반도를 넘겨주게 되고 베이징조약을 중재한 러시아는 연해주를 얻게 되었다. 

 

 

제국주의로 인한 결과

아편전쟁은 제국주의로 생긴 결과이다. 힘이 세면 힘이 약한 나라는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그런 논리로 한나라의 국가와 국민을 비인간적이고 비도적적으로 식민지화시켰다. 권력으로 인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이득을 갈취했다. 이런 과거의 역사를 보며 지금 우리 사회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이 든다. 국가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서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또한 국민들은 모두 단합해서 절대 다른 나라가 침법 할 수 없도록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