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3. 2. 26. 00:29

<일본> 고대사회, 조몬시대, 야요이 시대, 아스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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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nbsp; 일본 최초의 통일정권

 

일본의 신석기시대인 조문시대부터 청동기 철기문화 시기인 야요이 시대, 불교문화로 대표되는 야스카 시대까지 일본의 각 시대배경과 특징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조몬시대

일본은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해를 사이로 우리나라가 있고 반대쪽으로는 태평양이 있다. 기원전 1만 변경 날씨가 따뜻해져 빙하가 녹기 시작하고 신석기가 될 무렵 일본에 정착해서 사람들이 살기 기작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이동이 유라시아 대륙의 끝까지 이동한 것이다. 대륙의 끝부분이라서 일본의 문명은 늦게 시작했다. 그 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대륙에서 떨어져 섬으로 고립됐다. 일본의 신석기는 주로 강가나 해안가에서 움집을 짓고 사냥과 채집활동을 통해서 살았다. 조, 수수, 팥, 보리 같은 작물을 재배하는 농경생활도 했다. 수확물을 보관하기 위해서 토기를 만들었는데 새끼줄을 꼬아 토기에 꾹꾹 눌러 무늬를 새겼다. 이 토기를 바로 조몬 토기라고 한다. 조몬이 일본말로 새끼줄 무늬라는 뜻이다. 이런 모양의 토기가 활발하게 만들어진 시기를 조몬시대라고 하고 약 1만 년간 계속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서 변화를 가져온 일은 벼농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였다. 

 

야요이 시대

한반도 주변국가인 고구려와 신라와 중국이 있었는데 고구려와 신라는 세력 확대, 삼국 간의 전쟁이 격화되고 신라의 삼국 통일로 인해서 정치적으로 변화가 심할 때 사람들이 대규모로 일본으로 넘어갔다. 중국 또한 남북조 시기에 오랜 전쟁에 시달리던 창장강 유역의 한족들도 일본으로 엄청나게 넘어갔다. 일본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도왜인이라고 불렀다. 도왜인들은 벼농사와 청동기, 철기 관개 시설, 토기제작 기술을 가져왔다. 그래서 일본은 청동기시기와 철기 시기가 동시에 진행됐다. 이 시대를 야요이 시대라고 한다. 도왜인이 일본으로 건너올 때 가져온 벼농사 기술이 일본 사회를 완전히 뒤바꾸어놨다. 벼농사가 시작되면서 좋은 논밭 가진 사람과 없는사람 경작 기술을 가진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인해서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유 재산이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서 토지와 수확물을 가지고 전쟁이 일어났다. 이를 통해서 강력한 무기를 가진 사회 계층이 생겼다. 이로 인해서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로 나뉘었고 각지에서 여러 개의 작은 국가들이 탄생했다. 그러다 3세기때 30개의 작은 소국으로 통합되었다. 이 시대에 중국 황제에게 조공을 바쳐 왕으로 인정받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이런 정치 체제가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동아시아에서 널리 자리 잡아다. 일본도 이를 가장 잘 활용하여 세력을 키운 나라가 바로 야마토 정권이다. 3세기부터 4세기에 통일 국가가 성립하여 점차 지배권을 넓혀서 5세기에 일본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아스카 시대

야마토 정권은 5세기말부터 왕권강화 정책으로 지방 호족들과 조금씩 갈등을 빚었다. 지방의 여러 호족들은 야마토 정권에 반발하여 난을 일으켰는데 이것의 이름이 이와이의 난이다. 당시 왕인 게이타이는 한반도 백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그 지원을 바탕으로 반대 세력들을 강하게 진압하고 있었다. 게이타이는 지금의 일본 남쪽 지역인 아스카에 왕궁을 짓고 정치 중심지로 삼았다. 하지만 왕의 권력이 호족들보다 월등하지가 않아서 힘이 센 호족을 자신의 편으로 삼아야만 했다. 그 방으로는 결혼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는 외척 세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게이타이가 죽은 뒤 외척인 소가 가문의 피를 이은 쇼토쿠를 태자로 했다. 쇼토쿠 태자는 외척인 소가 가문 덕분에 3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왕권강화에 집중했다. 왕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 집권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쇼토쿠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불교를 도입한 것이다. 쇼토쿠 태자는 일본 최고의 절인 아스카사에서 고구려의 승려 혜자와 백제 승려 혜총을 스승으로 삼아 불교를 배웠다. 쇼토쿠 태자는 17개 조 헌법 발표를 하고 관직을 12개의 등급으로 하여 국가의 제도를 정비했다. 그중 1조는 화합은 가장 고귀하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대화로 정해야 한다로 이정신은 오늘까지 이어져 일본 관료 제도의 출발점으로 아주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쇼토쿠 태자의 왕권강화 정책들도 소가 가문의 권력이 커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쇼토쿠 태자가 죽은 이후에도 소가 가문은 20년이나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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