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3. 2. 26. 18:00

<일본> 무사정권시대, 막부의 시대, 전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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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이나 귀족이 나라를 다스렸던 일본이었는데 어떻게 무사들이 일본을 어떻게 지배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등장했는지 일본을 함께 알아보자.

 

무사정권시대

사라카와 천왕은 즉위한 지 14년이 되던 해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천황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상황이 되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섭관이 되어 섭정을 하듯이 자신도 똑같이 상황이 되어 천황을 대신하여 정치를 한 것이다. 상황이 머무는 곳을 원이라고 하는데 원에서 나오는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또한 직속으로  무술고수인 무사들이 있어서 그 권위는 하늘을 찌르는듯했다. 사카라와 상황은 그 후 43년간 원정을 하였는데 그사이 천황은 3번이나 바뀌었고 상황 3대에 걸쳐 원정은 100년간 계속되었다. 천황이 어릴 땐 시킨 대로만 하다가 어른이 됐을 땐 상황말만 듣기가 거북했다. 결국 천황과 상황을 각각 지지하는 세력이 생겨 결국엔 서로 충돌하면서 호겐의 난이 일어났다. 천황이 승리를 하였지만 결국엔 그 천황이 또 상황이 되어 원정정치를 이어나갔다. 권력을 잡는 원인이 무사들의 실력에 따라 달렸기 때문에 귀족들은 무사들을 뽑아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무사들 역시 자신들의 가진 힘을 깨달기 시작했다. 그 결과 무사들은 점점 강력해져 결국엔 천황의 정권까지 빼앗아 버렸다. 처음 전쟁은 다이라가문과 미나모토 가문의 무사들끼리 내전이었다. 승리자인 다이라 가문은 자신의 딸을 천황에게 시집보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위협을 느낀 황족은 전국 무사들에게 다이라 가문을 치라고 명령한다. 전국 무사들이 다이라 가문을 공격했는데 이 전쟁을 겐페이 전쟁이라고 한다. 결국 다이라 가문은 저항했지만 패배하고 만다. 새롭게 권력을 잡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직접 일본을 통치하고 싶어 했다. 천황에게 쇼군으로 임명받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했다. 쇼군이 통치하는 정치를 막부라고 한다. 미나모토 가문의 근거지가 간토지방 가마쿠라였기 때문에 '가마쿠라 막부 시대'라고 한다. 

막부시대

가마쿠라 막부는 일본의 독특한 봉건제를 확립했다. 그 내용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무사에게는 땅을 내려주고 그 대가로 쇼군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 싸우는 것이었다. 땅을 받은 영주나 무사를 다이묘라고 했는데 그들은 똑같이 자신의 땅을 그 아래 무사들에게 나눠 주고 똑같이 충성을 요구했다. 그 하급무사 아래는 농민과 상인 수공업자들인 일반 백성이 있었다. 새로운 막부가 들어설 때마다 막부 중심지는 변했지만 천황은 교토에 계속 머물렀다. 마지막 막부인 애도막부가 끝날 때까지 1000년 동안 교토는 번영할 수 있었다. 가마쿠라 막부가 힘을 키워 나가던 중 최초로 외부 공격을 받게 된다. 몽골이 침입하게 됐다. 몽골은 고려를 억지로 끌고 일본 규슈에 상륙하여 전쟁을 했다. 당시 일본 무사들은 일대일 기마전에 익숙했던 터인데 몽골은 많은 군사를 한꺼번에 몰아붙이는 방식의 전투였다. 또한 새로운 화약무기, 대포등 신식무기로 일본을 공격했지만 때마침 태풍이 몰려와 몽골군 함선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그 후 한차례 공격을 더 했지만 애석하게도 또 한 번 태풍이 몰려와 몽골의 일본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전쟁은 승리로 끝났지만 방어전쟁이였기 때문에 새로 줄 땅도 없고 또다시 몽골이 쳐들어 올 수가 있어서 방어시설 만들 비용을 요구했더니 무사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이때 황족인 고다이고가 반기를 든 무사들과 함께 가마쿠라 막부를 공격하여 결국 무너뜨리고 고다이 고는 천황에 올랐다. 하지만 무사들은 막부의 부활을 꿈꾸며 무사들의 반란이 계속 있어 다카우지가 정권을 쟁탈하여 새로운 막부를 세웠는데 근거지가 무로마치 거리였기 때문에 무로마치 막부라고 한다. 고다이고 천황은 남쪽으로 도망가 새로운 정부를 세웠고 무로마치 막부는 북쪽에서 정치를 해서 이 시기를 남북조 시대로 2 체제로 이어져갔다. 남조와 북조는 60년 싸우다 결국 북조가 승리하여 남조는 천황에서 물러나서 남북조는 통일되고 이후 천황은 500년간 정치를 관여할 수 없게 된다. 즉 쇼군이 일본을 완벽하게 통치하게 된 것이다. 

 

전국 시대

무로마치 막부 말기에 쇼군 후계자 선정문제로 '오딘의 난'이 발생했다. 그 이유는 당시 교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아들이 없어서 동생을 후계자로 삼았는데 뒤늦게 아들이 생겼다. 그래서 아들과 동생이 후계자 문제로 다투게 됐는데 요시마사는 그냥 훌쩍 떠나버렸다. 그 후 후계자 사이 대립으로 인해서 10년 넘게 전쟁을 하는 바람에 교토는 초토화되었고 난은 지방으로 확대됐다. 새로운 패권을 잡기 위해서 다이묘들 간에 전쟁이 100년간 지속됐고 이 시기를 전국 시대라고 한다.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을 통일의 기반을 닦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는데 일조를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을 안정시키는데 노력을 했다. 전국이 안정되자 중국까지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명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조선이 있어서 명분으로 명으로 가는 길목만 내주라는 요구를 하면서 조선을 차지하려는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이로서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임진왜란으로 7년 동안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전쟁 중 이순신장군의 활약으로 일본군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바닷길이 막혀서 일본은 무기와 식량을 공급받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들만 남아서 권력 쟁탈전이 또 벌어졌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차지하여 일본의 전국 시대의 혼란이 끝나고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 막부 시대'가 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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